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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 서정윤

스톤^^ 2007. 6. 20. 23:23

      홀로서기

                         서정윤   ㅡ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처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려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리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 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이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 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닫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음악은James Last - Over valley and 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