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ne지금은 말할수있다(통하는 블러

[스크랩] stone 지금은 말할수있다(4부)

스톤^^ 2006. 4. 8. 23:58
살아가는 것이 낭만도 있고 부질업는 짓이 먼훗날이 추억이 될 수 있다고본다. 머럴까 말로 표현하긴 그렇지만 사람의 운명이나 역사는 순순간 변하는가 보다. 카페에 들어선지가 적지않는 시간이 지났네.

눈물겨운 시간을지나 먼과거와 현재을 교차하면서 우린 또 만났지 않았는가~`! 어쩔것이여!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늘 삶은 우리곁에 늘 존재하고 그걸 의무로 받아 들이지..... 보고잡다!!!!!! 술 한잔의 큰의미을 보태기보다는 억척스런 우리 삶이 자리하는 이곳이 자랑스럽지 않는가!

>>>>>>>> 그렇게 며칠을 뒤척였든가. 뒤숭숭한 내자신. 하늘과 땅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등속에 무언가 눈칫것 할일을 지치도록 하고싶어서 보해농원의 나무심는 일을했다.하루에 20개의 구덩이 가로세로 1m정도크기로 개당 700원씩받고 뿌리깊은 야산의 돌맹이을 캐며 내자신의 꺼내고 싶었다. 사실 우리집은 많은 농사를 짓는 편이고 집에서도 일이많다.

동내사람의 수근거림에 다른곳에 일을 찿았고 난 그게 조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지난해심었던 매화의 어린가지에 하나씩 작은 꽃망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에 대한 지친 기억도 있지만,밤늦게 북족하늘 별빛아래 그곳이 날부르는 것이였다. 가자. 아버지 주머니에서 30만원을 흠쳤다. 저 갈람니다 쪽지하나 남기고 그렇게 또하나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광주역전에서 집에 전활걸엇다 엄마 미안해요. "진작 보내야 되는데 집에있는 널보면 이 엄만 가슴이 늘 아펐다". 하신말씀 날또 슬프게 했고 광주고속에 몸을 얹은 난 울부짓는 한 청춘의 광란적행동에 분개을 느꼇다.

도착해서 거여동 낙지에 따뜻한 대우에도 빈둥거리며 1달을 보냈다. 먼세상 사람이되어있는 남현과 한때를 그렇게 보내고 어느날 버스를 타고 종로로 향햇다 일을 하러가기위해 첫 오디션을 보는 날이다.팝스다이얼의 김광한과 mbc 베스트효과음담당인 김성모 후에 가수가되었던 임수정.최성수.노사연과 종로2가 썬웨이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낮이면 청계천에서 음반을 사서모으고 남산도 혼자걸었다.

한국에서 제일 큰 음악감상실 중앙극장옆 가로등에서 고향친구 지사리 김성호(소희동네)와 같이 한 시절을 보내고 이테원도 가고 31빌딩도가고 며칠뒤에 86멕시코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에 나라가 듫끊었던 기억도 난다. 또 겨울이다. 눈오면 슬퍼지는 난 사람을 그리워했다.

나의 일자리앞에 항상 등돌린채로 와있던 2명의 여자친구가 생각난다. 한명은 혼혈아 였고 한명은 부모를 모시고사는 어린 가장이였는데 참 마니생각나네. 김광한이 소년소년가장돕는 일을 하면서 알게된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다.

몰랐는데,그중 한친구 어느날 왕십리 친구집에서 새벽에 나오는 일이 있었는데 채소을 길에 팔고있고 한참지나니 그의 엄마가 대신하고 가방을 들고 떠나는 그친구의 뒷모습도 선하네... 틈난는대루 가끔은 그사람들 생각하고 이렇게 쌀쌀한 늦은 가을밤이면 그사람들 머하나싶고 발걸음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삶의 좌우명이 기억되는 순간에도 남을 생각하는 따듯한 맘이 날 교훈 삼는 이유는머일까? 행복한 친구들이여! 왜 행복하냐구.(광주모임에서 알수있듯이 친구가 마는 이유로....) 계속해서 더 진행하면서 쓰고 싶은데 ............. 뭔가 과거 생각을 하고 허니 가슴이 저려 여기서 멈쳐진다. 나 어떡하면 조아여.이가슴이 이렇게 아픈걸......

재용의 말대루 음악방이 그런다니 열리면 올렵니다. 어잰가 ..희선 명주.한영.희숙과 같이 식사을 했다. 반주 한잔 하면서 카페에 올린 글이 머라고 오해의 소지가 업었으면 하는 맘 간절하고 시골의 태어난 생각이나 등등....... 표현하는 사람있고 못하는 사람있는데 젓가락의 길이는 같다고 하였다. 각기 전문이 다있다면 때론 관심있다면 표현하지 않아도 맘으로 알수있음을....... 낼 떠나는데 음주가 몸을 힘들게하는군여.... 샌님! 사랑합니다.친구들도......... 동창회때봐요



출처 : 산이중13
글쓴이 : 스톤(유대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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